연금경제

누적수익률 34.47%…'푸른씨앗'이 보여준 퇴직연금 기금화의 가능성

삼성증권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 개선 방향: 해외 사례를 통한 시사점’ 리포트 분석 근로복지공단 최신 자료로 본 ‘푸른씨앗’ 성적표

문유정 기자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 ‘푸른씨앗’의 퇴직연금 기금 운용 성과를 표현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 ‘푸른씨앗’의 퇴직연금 기금 운용 성과를 표현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이 500조원을 넘어섰지만, 정작 가입자들이 체감하는 수익률은 기대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삼성증권 리서치센터가 지난 6월 내놓은 보고서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 개선 방향: 해외 사례를 통한 시사점’을 보면, 2025년 말 기준 적립금 규모는 501조원까지 커졌지만 최근 10년 동안의 연평균 수익률은 2%대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보고서는 그 배경으로 적립금 상당수가 손실 위험이 낮은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몰려 있는 점을 짚으며, 이런 쏠림 구조로는 퇴직연금이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본래 역할을 충분히 해내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이런 가운데 퇴직연금 적립금을 한데 모아 전문가가 장기·분산 투자하는 ‘기금형 퇴직연금’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기존 계약형이 사업장과 금융회사 간 계약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구조라면, 기금형은 노사와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의사결정 체계를 두고 적립금을 하나의 기금으로 모아 관리하는 방식입니다. 자금이 커진 만큼 다양한 자산에 분산 투자할 여지가 커지고, 전문적인 자산관리가 가능하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힙니다.

 

해외에서는 이미 자리 잡은 기금형

기금형 퇴직연금은 해외 주요국에서 이미 폭넓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삼성증권 보고서는 대표적인 사례로 호주와 영국을 분석했습니다.

호주는 1992년 ‘슈퍼애뉴에이션’을 도입해 강제 의무 납입을 기반으로 퇴직연금 자산을 장기적으로 운용하는 체계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2005년에는 기금 선택제를 도입해 연기금 간 경쟁을 유도하는 구조도 마련했습니다. 영국에서는 정부가 2011년 공공 직장연금 기금 ‘NEST’를 설립했고, 2012년 직장연금 자동가입이 시행된 이후 가입률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NEST는 2025년 3월 기준 회원 1,380만 명, 운용자산 498억 파운드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다만 해외 사례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호주는 사실상 강제가입, 영국은 자동가입을 기반으로 하는 등 제도적 조건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금형 논의보다 먼저 출발한 '푸른씨앗'

그런데 사실 한국에도 이미 기금형 퇴직연금의 실제 운용 사례가 있습니다. 2022년 9월 출범한 ‘푸른씨앗’입니다. 푸른씨앗은 중소기업 근로자의 퇴직연금 도입을 지원하기 위해 여러 사업장의 부담금을 하나의 기금으로 모아 전문 운용기관이 관리하는 방식으로 설계됐습니다.

출범 이후 운용 실적은 수치로도 확인됩니다. 근로복지공단 최신 집계에 따르면, 2026년 6월 기준 푸른씨앗의 적립금은 1조9,904억 원을 기록했으며, 2022년 9월 출범 이후 누적수익률은 34.47%, 2025년 한 해 수익률은 8.67%에 달했습니다.

가입 규모도 빠르게 늘었습니다. 가입 사업장은 2023년 말 1만3,691개소에서 2026년 6월 4만2,243개소로 늘었고, 같은 기간 가입자 역시 6만4,681명에서 19만55명으로 증가했습니다. 다만 누적수익률 34.47%는 2022년 9월 출범 이후 축적된 성과로, 이를 연간 수익률과 동일하게 볼 수는 없습니다.

 

개별 상품 선택 대신 전문운용…위탁운용 비중 93%

푸른씨앗은 수익률뿐 아니라 적립금을 운용하는 방식에서도 일반적인 DC형과 차이가 있습니다. DC형에서는 가입자가 금융상품을 선택하고 운용하는 반면, 푸른씨앗은 여러 사업장의 적립금을 하나의 기금으로 모아 전문적인 의사결정 체계를 통해 운용합니다.

푸른씨앗은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운영위원회를 중심으로 투자전략·리스크관리·성과평가 등 3개 위원회를 두고 있습니다. 전담운용기관을 비롯한 전문 운용 주체가 실제 자산운용에 참여하는 구조입니다. 2026년 1분기 기준 전체 운용자산 가운데 위탁운용과 직접운용 비중은 93대 7입니다.

삼성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푸른씨앗의 2023~2027년 중장기 목표수익률은 4.4%입니다. 중장기 자산배분 목표 비중은 채권 62%, 주식 21%, 대체투자 13%, 단기자금 5%로 설정돼 있습니다. 특정 자산에 집중하기보다 여러 자산에 나눠 투자하는 구조입니다.

 

가입 대상 확대…이제부터가 시험대

푸른씨앗의 외연은 확대되고 있습니다. 개정된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이 지난 7월 1일부터 시행되면서 가입 대상은 기존 상시근로자 30인 이하에서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됐으며, 2027년 1월부터는 100인 미만 사업장까지 넓어질 예정입니다. 새롭게 도입된 ‘푸른씨앗 IRP(개인형퇴직연금)’를 통해 가입 범위도 넓어졌습니다. 자영업자와 노무제공자, 공무원 등 소득이 있는 사람도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정부는 퇴직연금 사각지대를 줄여나간다는 계획입니다.

 

이러한 외연 확대는 전체 퇴직연금 제도 개편 논의와도 맞물려 있습니다. 지난 2월 노사정(노동계·경영계·정부)은 기존 계약형과 기금형을 병행하고, 금융기관 개방형·연합형·공공기관 개방형 등 다양한 형태의 기금형 퇴직연금을 활성화하는 방향에 합의했습니다.

푸른씨앗은 향후 제도 개편에 참고할 수 있는 기금형 모델로 주목됩니다. 실제 운용 경험과 성과가 축적돼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지금까지의 성과가 향후 도입될 다양한 형태의 기금형 퇴직연금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기금 규모와 의사결정 구조, 자산배분 방식 등에 따라 운용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관건은 외연이 넓어진 이후에도 성과를 이어갈 수 있느냐입니다. 가입 대상과 적립금이 늘어난 뒤에도 안정적인 운용 성과를 유지할 수 있을지가 향후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의 방향을 가늠하는 중요한 참고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문유정 기자kidcol030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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